무죄(5) - 김광일

무죄(5) - 김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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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고
교화소는 그 열악한 환경으로 해서 각종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한다. 나무에 치여 죽는 사고, 굴이 무너져 죽는 사고, 도끼에 찍히는 사고 같은 것은 너무도 보편적인 사고이며 어떤 날에는 젖은 브로크를 하루에 2층까지 축조했다가 무너져 한 번에 12명이 죽는 참사도 생긴다. 그러나 이 모든 사고는 교화소에서는 예상사로서 ‘불망산’으로 속에 덧쌓이는 뼈로 되고 말며 면회 온 가족들에게는 사망통지서 한 장이면 끝이다. 수용자는 사람이 아니며 그 목숨은 사람 목숨이 아니다.

이 끊임없는 사고 속에서도 제일 엄중하고 큰 사고는 도주사고이다. 교화소에서 수용자들이 도주한다는 것은 말이 도주이지 불가능한 일이다. 담당선생과 초병들이 무기를 휴대하고 지키는데 누가 감히 도주할 생각을 하며 또 반장과 감시가 유급으로 순간도 짬이 없이 점검하는데 어떻게 도주한단 말인가. 그러나 경비 열이 도적 한 명 못 막는다고 도주사고들이 생긴다.

도주자가 발생하면 사이렌이 울리고 모든 수용자들은 입방시킨다. 사이렌은 교화소에서 제일 큰 사고인 도주자가 생겼을 때만 울린다.

“또 어느 새끼 뗐구나.” “며칠 동안 또 갇혀 있어야겠구나.” 하며 수용자들은 그 자식이 잡히지 말았으면 한다. 왜서 체포되어 처형당할 그를 동정해서가 아니라 그가 잡힐 때까지 쉴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교화소 보안원들은 각자 자기 담당구역으로 나가 며칠이고 도주자가 잡힐 때까지 있어야한다.

2005년 여름 본소의 한 수용자가 도주했는데 6일 만에 잡혀 왔다. 도주했으면 영 멀리 갈 것이지 이 어리석은 자는 청진까지 가서 자기가 군복무 하던 부대의 정치부장을 찾아가 억울함을 하소연했다고 한다. 부대에서는 죄수가 찾아온 기상천외한 일에 황당하여 우선 체포해놓고 교화소에 연락하여 호송하게 했다.

“저 새끼 또 쏘겠구나.”
“별날 머저리새끼 다 있구나.”
“그 새끼 거긴 왜 찾아가.”

수용자들은 잡혀온 그를 두고 머저리라고 별소리를 다 했다. 도주자는 노동당의 교양정책에 대한 반항으로 되어 예외 없이 사형이란다.  내가 입소하기 전 해에도 두 명의 도주자를 그날로 체포해서 대사 석방 전날에 동둑에 세우고 사형했다고 한다.

5~6년씩 생활한 수용자들은 몇 년 전에는 교화소에서 두 역전 떨어진 곳에서 체포한 도주자를 ‘자주82’ 트럭에 밧줄로 목을 매여 개처럼 마당을 질질 끌고 다니다가 사형했다고 한다.  또 2년 전에는 덤불속에 숨은 도주자를 한 초병이 현장에서 총을 발사하여 그의 몸을 벌집처럼 만들었다고 한다.

한사코 잡혀 죽을 도주를 하는 원인은 모두가 배가 너무 곱아서이다. 한 끼라도 잘 먹고 싶어서 교화반의 밥통을 도적질하여 도주해서는 기껏해야 여섯 덩이를 먹고는 체포 되여 사형당하고 사회의 집에 들어가 밥을 훔쳐 먹다가 체포 되여 사형당해야 한다.

배고픔 때문에 사형당해야 하는 도주를 했다고 하면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먹을 것에 옴하다 미치는 그 순간에는 먹을 생각 외 그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한다. 먹고 나서 그제야 제정신이 들면 이제 닥치게 될 비참한 운명에 너무도 후회 막급하여 절망한다고 한다.

누구도 그 어떤 반항의식으로 도주한자는 없지만 이유 불문하고 사형했다고 한다.

이번에도 사형하겠지 했는데 독방에 들어갔다, 취급 한다 ,재판한다 하더니 3년 가형이라는 교화소이래 전례 없는 처벌로 처리되었다. 수용자들 속에 쉬쉬하며 도는 말에 의하면 UN의 압력을 피해 공화국이 사형을 자제한다고 했다. 하여간 3년 가형이여도 운수가 정말 좋은 자였다.

그러나 도주했던 자들은 체포되는 순간부터 취급 시까지 이어지는 혹독한 매질에 거의 다 정신줄을 놓고 죽었다. 징역살이가 너무도 고달프고 그렇다고 도주할 수는 없으니 병신이 되어 팔다리가 하나 없으면 병보석방을 시키지 않을까하는 어리석은 생각하고는 돌아가는 기계의 피대(벨트)나 치차(기어)에 스스로 팔다리를 잘라버리는 자도 있다. 하지만 부주이로 생긴 사고로 위장해도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이런 병보석방 기도는 수없이 많고 그 방법이 자신에게 너무도 비열하고 잔인하다.
석회와 소금을 먹으면 배에서 그 어떤 작용이 일어나 설사가 멎지 않아 허약에 빠진다고 한다. 허약으로 병보 기도하는 자들의 수법중의 하나인데 너무 몸 상태를 조절하다나니 죽어난다.

몸에 난 상처에 똥을 바르면 상처가 더욱 헤져서 환자로 출력할 수 없게 되는데 이렇게라도 고역을 피해보려고 자기 몸을 파괴하는데 정도가 지나쳐서 결국엔 썩어나서 발을 잘라야 할 때도 있다.

이러한 병보 기도 자들이 발각되면 엄중한 처벌과 철저한 감시가 뒤따르며 그런 자들은 그 등쌀에 눌리어 질려 죽는다.

이어지는 고역과 아득한 형기에 희망을 잃은 수용자들 속에는 대못이나 숟가락 꼭지를 끊어 먹고 자살하는 자들이 있다. 이런 자들에게는 숨넘어가는 순간까지 그 어떤 치료가 없다.

교화소 자체가 병이 나면 그 어떤 대책이 없다. 간단한 맹장수술도 할 처지가 못되어 시간을 끌다나니 죽어나고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먹어 배가 불어난 것을 제때에 손쓸 수가 없으니 위가 터져 나가도 속수무책이다. 오직 면회를 와야 만 조금의 약물을 반입할 수 있는데 수용자가 가지고 있으면 부정행위와 자살기도에 이용될 수 있다며 군의가 보관하는데 직접 수용자가 소비하는 것은 극히 적다.

교화소에서의 약이라면 오직 속탈에는 쑥뿌리를 우린 검은 물과 황경피나무 껍질을 가루낸 것이 전부며 너무도 많은 동상에는 마른 가지 아치를 우린 것이면 끝이다. 그러나 12교화소는 고산지대라 이것도 귀하다.

면회가족들에게서 강제로 반납 받은 약물로 간혹 예방주사를 놓을 때면 주사 바늘 한개로 2~3백 명을 찌른다.
수의사도 짐승을 이렇게는 다루지 않을 것인데 수용자들은 짐승보다 못한 것이다.
정말 지옥이었다.

7. 결심
2007년 2월 7일 나는 대사로 만 2년 5개월의 교화생활을 끝내고 출소하였다.
나에게는 그 어디도 통지서를 보낼 데가 없어 대사 날 출소하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스스로 알아서 나를 찾아오셨다.   출소할 때가 됐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자 이번에도 못나오는지 알아보려고 아무런 준비가 없이 오다나니 나는 죄수복을 그냥 입고 나왔다.

전 인민군 종군기자 이인모가 남한에서 감옥살이하다가 출소할 때 찾아줄 가족이 없어 수인복을 염색해 입고 나왔다더니 나도 죄수복을 입고 나오게 되었다.

“광일아”
“엄마…….”
“이그……. 살아서 나왔구나. 됬다. 남들이 다 죽는대도 난 우리 광일이는 죽지않는다고 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바친 피타는 노력은 생각지도 않으시고 살아나온 내가 그저 장하기만 한 것 같았다.
너무 늦은 저녁이라 교화소 입구의 어느 개인집에 들어가 사정을 구하고 자고 가기로 했다.

저녁을 먹자고 밥상에 둘러앉는데 나는 내 주제가 험하고 냄새 날까 저어되어 죄송스레 거듭 사과하고 어머니만 밥상에 보내고 부엌 널마루에 앉아서 먹었다.

밤이 깊어 만 시름 놓고 잠든 어머니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손을 쥐어보니 거북등처럼 갈라진 것이 앙상히 뼈만 남았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져 입술을 깨물었다.

“엄마 정말 미안하오.”
77세 된 어머니를 이토록 고생시킨 내가 너무도 원망스럽고 나와 어머니를 이 운명에 몰아버린 이 땅이 억울했고 저주스러웠다.

나는 37살이 되도록 그때처럼 나라를 저주한 적이 없었다.  결심을 했다. 이 땅에서는 못산다!
먹고살자고 소 갈 데, 말 갈 데 다 다닌 내가 왜 죄수의 운명까지 겪어야만 했는가? 법을 어긴 범죄자였기 때문이다.

하다면 내가 왜서 법을 어기였는가? 오직 살기 위해서였다. 일해서는 먹을 쌀을 주는 곳이 없고 돈을 주는 곳이 없는 땅에서 돈을 벌어 살아남기 위하여, 쌀을 가져오려고 비법월경을 했던 것이다.

땅을 뚜져 농사를 하려해도 뚜질 땅이 없고 짐승을 키우려 해도 짐승 살 돈이 없었다. 나뿐이 아니라 누구나 그랬고 갓난아기에게 쌀죽을 먹이자해도 그 쌀을 사려고 법을 어겨야만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택할 수 있은 최선의 방법은 비법월경이었다. 들키는 날엔 아차 하여 잘못 몰리면 사형까지의 위험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위험까진 감수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경계하며 살았으니 돈을 벌면 얼마나 벌었겠으며 번다고 한들 언제 한 번 마음 편히 써본 적이 있었겠는가.

이것이 내가 북한 땅에서 지은 범죄이다.

어느 제도나 범죄자는 독재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살아 갈 수 있게 만든 법을 어겼을 때 독재를 실시해야지 살아 갈 수 없는 법을 만들어놓고 그 법을 어겼다고 독재를 실시하면 이는 어불성설이며 이 독재는 명백히 체제유지를 위해 인민을 억누르는 강권이다.

이 독재 밑에서 누가 살아남겠는가?  이 독재 속에서 살아남으려 한 내가 과연 범죄자인가?
그 암흑의 땅에서 살기 위한 피타는 몸부림을 치다 더는 살 수 없어 탈북의 길에 오른 사람들이 모두 범죄자인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난 사람들이며 자유를 찾아서 떠난 사람들이다.

하기에 나는 그 어떤 변명 없이 말한다.

나는 범죄자가 아니다!

- 끝 -

2010년 5월 김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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