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탈북자동지회에서 진행했던 수기공모전 입상한 글입니다.

얼마전에 탈북자동지회에서 진행했던 수기공모전 입상한 글입니다.

바다새 0 1265

나의 꿈

평소에 우리는 믿기 어려운 일, 기쁜 일, 슬픈 일이 생길적마다 “꿈이냐, 생시냐?”라는 말을 자주 하군 한다.

꿈이란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믿음과 강한 의지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피눈물 흘리며 죽음을 각오하고 자유를 찾아 고향땅을 등지고 떠난 나의 꿈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 떠난 땅, 굶주림에 죽어가는 자식들의 모습을 보면서 떠나야만 했던 탈북 행은 결코 순탄한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엄동설한에 두만강을 건너다가 얼음이 부서져 물귀신이 될 뻔한 일, 낯선 중국 땅에서 항시 불안에 떨며 숨어살던 일, 한국에 오기전까지의 모든 일들이 지금은 꿈만 같다.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듯이 흘러간 과거의 아픔도 현재의 기쁨이 있으면 모두 꿈처럼 여겨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루고 닮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 …….

녹음이 우거진 하나원 운동장에서 아침마다 숙연히 노래를 부를 때부터, 나의 꿈은 시작된 것 같다.

꿈이 아닐까 의혹을 품게 되는 현실 때문에 자신의 존재감마저 어렴풋하게 느껴진다. 광활한 중국국경을 넘어 제3국의 공항에서 난생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내린 그날부터 벌어진 모든 일들이 아직도 꿈처럼 생각된다.

하나원에 입소하여 생일파티에 참석하게 되던 날이었다.

이미 생일은 지났지만 그곳에서는 탈북과정과 입국심사과정에 생일이 있는 사람들을 뒤늦게나마 축하를 해주는 것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생일케이크와, 여러 가지 난방과일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생일축하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선생님들과 자원봉사 오신 분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으며 케이크위에 켜진 촛불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총무님 한 말씀 하세요”

하나원에 자주 찾아오시는 다감한 수녀님이 쥐어 주는 마이크를 잡고 연단에 선 나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느라 여념이 없었다.

불시에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어제 날, 중국에서 체포되어 강제 북송되었던 그때가 스크린마냥 재현되었다.

“철커덩!!”

귀청을 때리는 감방철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는 온 몸을 움츠렸다. 6월의 어느 날, 연길시의 흥안구치소와 도문에 있는 변방수용소를 거쳐 북송된 나는 온성보위부를 거쳐 종성노동자구 장생리에 있는 국가보위부 함경북도 집결소라는 악마의 소굴에 수감되게 되었다.

적지 않는 탈북자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고초를 겪은 수감과정의 수기를 많이 썼지만 내가 갇혔던 그곳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병풍을 둘러 친 듯이 사방이 산으로 막힌 그곳에는 국경연선지역의 보위부에서 이송되어 온 “특범”들만이 수용되어 있는 곳이었다. 다시 말하여 한국기도가 확정이 되거나 중국에서 교회에 간적이 있는 탈북자들만 가둬두는 곳이었다.

나역시 처음에는 왜 이곳에 이송되었는지 몰랐지만 체포당시 함께 있었던 사람중 한명이 나도 한국에 도망치려했다고 자백을 한 것이 이유였다는 것을 훗날에 알 수가 있었다.

온몸을 덮쳐드는 공포와 생사를 기약 할 수 없는 절망에 빠진 나는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얼마나 후회한지 모른다.

부모님들이 지어준 이름마저 빼앗겨 oo번이라는 번호로 불리는 사탄의 소굴에서 나는 사람이 아니라 창고에 수납된 물건이었다.

울어도 소용없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그곳에서 나는 매일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다. 그리고 악몽에서 한시라도 빨리 깨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도 혹독하고 무자비하였다. 수감 된지 2달 만에 나는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지옥 같은 그곳에서 생일축하를 받을 생각은 전혀 안했다. 인권마저 유린당하고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야 했던 나에게 생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었다. 그러나 한 감방에 수감되었던 회령에 온 청년이 사실을 알고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더니 전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의 틈을 이용해서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형님도 운이 없네요. 이런데서 생일을 맞다니, 참”

나는 그가 한 말이 야유처럼 느껴져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다음날 아침 얼마 안 되는 썩은 콩밥을 먹기 전에, 그 청년이 느닷없이 소리치는 것이었다.

“선생님!(수감자들은 그렇게 불러야 했다)O호 감방 0번 한 가지 말 할 수 있습니까!”

청년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감방속의 고요를 깨며 메아리쳤다. 나는 그가 생일소리를 하려는 걸 직감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그를 막아야 한다는 충동을 느꼈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일거일동을 모두 승인을 받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는 몸이라서 그 청년을 막을 수 없었다.

매 감방마다 설치된 감시카메라와 작은 숨소리마저 확산되어 울리는 음향장치 때문에 우리는 늘 감시받고 있었다. 어쩌다 밤중에 정전이 되면 그때는 우리에게 자유시간이 차례지는 셈이었다.

“괜히 생일소리를 했다가 졸경을 칠 것만 같아”

나는 속으로 애타게 부르짖었다. 그러나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뭐야!”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사탄은 감방철창 앞에 장승처럼 서있었다.

나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 간수는 내가 이곳에 수감된 첫날 밤,몸수색을 받느라 알몸이 되어 조사실에 있을 때 혁대로 나를 사정없이 후려치던 그놈이었기 때문이다.

소위 그곳에서 겪어야 하는 신고식인 “초절임”이라는 환영행사였다. 눈에 살기를 띠고 가죽혁대로 사정없이 맞을 때 나는 동물원의 맹수조련사 생각이 나서 짐승이 된 자신을 알게 되기도 했다.

그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다시 덮쳐드는 공포감 때문에 나는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았다.

“선생님 00번이 오늘 생일이랍니다. 밥을 좀 더 주게 배려해주십시오”

진정이 어린 회령청년의 목소리가 또다시 내 귀 청을 때렸다. 물론 배는 고팠다. 드문 히 팬티차림으로 수감자들을 감방별로 일광욕을 시킬 때 봄기운을 받아 갓 돋아난 새파란 풀을 발견하면 서슴없이 입에 쓸어 넣기도 하였다. 한번은 비교적 건장한 체구의 수감자들을 끌어내어 수용소건물 옆에 있는 밭에서 호박 심는 일을 시킨 적이 있었다.

그때 에어린 호박모를 심으면서 함께 인분을 퍼서 땅에 비료대신 주군 하였는데 너무 배가 고파 호박잎을 뜯어 먹다가 간수에게 발각이 된 적이 있었다. 손에 인분이 묻은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입에 쓸어 넣는 나를 보고 간수는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멍멍이도 안 먹는 풀을 너는 먹네.

나는 눈물이 왈칵 나왔다. 개보다 못한 인생! 더 참을 수 없던 것은 개보다 못한 나를 비웃는 인정사정없는 악마보다 더한 간수의 몰골이었다.

“00번 앞으로 나와!”

간수의 호통소리와 함께 나는 반사적으로 철창 곁으로 다가갔다.

“오늘이 생일인가?”

마 씨 성을 가진 그 간수는 의외로 조용한 말투로 나를 넌지시 바라보고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래도 조국에 와서 생일을 맞았으니까 다행이지?”

“네”

입가에 살기 띤 미소를 머금은 간수의 말에 나는 혹시 진심으로 밥을 더 주지 않을까하는 미련이 생겼다.

“선생님이 생일 선물을 주겠다. 손 내밀어!”

나는 무심결에 철창사이로 두 손을 내밀었다. 간수가 갑자기 허리에서 수갑을 꺼내더니 손목에 채웠을 때에야 정신이 든 나는 무릎이 와들와들 떨리기 시작하였다.

그가 들고 있던 무쇠로 만들어진 길쭉한 감방열쇄가 시야에 들어왔다.

다음 순간 열쇄는 나의 손등을 사정없이 매질하기 시작하였다.

“한번, 두 번,.. 너 몇 살이야?”

나이만큼 내리치는 매는 나의 마음도 아프게 했다. 순간 흘러나오는 신음소리에 간수는 더 야무지게 때린다.

고압전류에 감전된 듯 순간순간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가슴이 아파났다. 나는 인간이 아닌 물건이었다. 고령에 이른 부모님께 흰 쌀밥에 고기국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고 병들어도 제대로 된 치료도 약도 써드리지 못하고 비명에 언 땅을 파고 묻어드려야 했던 불효자식이며 한 살도 안된 자식을 제대로 못 먹여 영양실조로 죽게 한 부모였다.

제대로 된 나라에서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싶어 먼저 간 부모형제의 넋을 생각하며 피눈물 흘리면서 자유를 찾아 떠난 탈북자의 죄가 과연 무엇인가!

가슴속에서 아픔과 함께 반항심이 우후죽순마냥 솟구친다.

“개 대가리 같은 놈이 뭐? 생일?”

간수의 입에서 짐승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고함소리가 온 감방안에 메아리쳤다.

손등이 터지고 손톱이 깨져 선지피가 뚝, 뚝 떨어졌다. 마치도 나의 눈물을 대신하듯이 한 방울 또 한 방울…….

억울한 매를 맞으면서도 아프다는 소리마저 낼 수 없는 감방.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닥치는 대로 잡아가두고 때리고 치고 인간이 소유한 감정인 희로애락을 표현해도 안 되는 사탄의 소굴이었다.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차디찬 감방 안에 앉아있어야 했던 “숨쉬는 물건”이었다.

한동안 매를 맞으니 아픈 줄도 몰랐다. 간수는 숨을 몰아쉬면서 매를 그치더니 수갑을 풀어주었다.

옆 감방에서 여성수감자들이 조용히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병상련의 눈물인지, 한 많은 북한 땅을 탄식하는 건지 슬픔의 세레나데는 은은하게 나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그날 밤 회령청년이 정전된 틈을 타서 캄캄한 속에서 나의 엉망이 된 손을 어루만지면서 조용히 속삭였다.

“형님, 미안해요. 그렇게 될 줄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내손을 후후 불어주는 그가 나는 밉지 않았다.

나는 답례로 어둠속을 더듬어 청년의 얼굴을 쓰다듬어주었다.

그의 촉촉하게 젖은 눈언저리를 만진 나는 속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서로 큰 소리로 맘 놓고 말 할 수 없는 처지였으나 나는 그가 흘리는 눈물 속에 스민 깊은 뜻을 십분 이해 할 수 있었다.

“이 세상에 우리를 구원해줄 구세주는 없을까? 너도 나도 인간인데 하루만이라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

말없이 마음과 마음으로 대화를 하던 중 회령청년이 나의 손바닥을 끄당겨 손가락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형님, 우리 살아서 나가면 회령에서 생일상을 잘 차려줄게!”

나는 오열을 터드려 낡아빠진 모포를 꽉 깨물었다. 동시에 더는 바깥세상을 못 보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솟구치는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10학년(그곳에서는 1개월 단위로 이렇게 불렀다. 즉 10개월 수감자라는 뜻이다.)생인 그가 확고한 “한국기도죄”로 더는 바같세상을 볼 수 없어 요덕수용소에 가게 되어있다는 것을 퍽 후에야 알수가 있었다. 다시 말해서 회령청년은 살아있는 영혼인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알면서도 나를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그 청년의 미덕은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그날 밤 철창사이로 보이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꿈을 꾸었다.

자유로운 몸이 되어 회령에 있는 백살구나무 아래에서 그 청년과 마주앉아 즐겁게 생일파티를 하는 꿈이었다.

그 꿈은 나에게 지옥같은 사탄의 소굴에서도 한 가닥 희망을 주고 삶의 의욕을 주었던 것 같다.

나는 그때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간절히 빌었다.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불쌍한 탈북자들을 구원하여주십시오!

죽어가는 가족들을 보면서 구원을 바라고 자유를 찾고자 떠난 불쌍한 사람들을 짐승처럼 학대하는 이 사탄의 무리들을 벌하여주십시오.

그날, 나의 간절한 소원은 유독 나에게만 차례진 것이다. 나는 다행히도 그곳에서 7개월 만에 살아나왔고 감옥에서 알게 된 벗의 도움으로 재차 탈북을 시도하여 무사히 한국에 올수 있었던 것이다.

회령청년은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진 후 종무소식이었다. 그때 감옥에 수감되었던 모든 수감자들의 행운을 빌며 나는 지금도 기도를 올리군한다. “제발 그들이 살아있기를, 그리고 행복하기를”

나는 지금 행복에 겨워있다. 그리고 꿈을 꾸고 있다.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대한민국이 안겨준 자유의 꿈이다!

꿈 이야기의 마지막 이야기를 하겠다. 먼 훗날 통일된 한반도에서 38선이 뭔지 탈북자가 어떤 사람인지 ,하나원이 뭔지, 수용소가 뭔지 모르는 통일세대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옛날에 우리나라에는 자유를 갈망하던 탈북자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두만강을 건너다 총에 맞아 죽고 형장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하면서까지 ”자유“를 외쳤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자유“라는 양식을 준 사람은 바로 대한이라는 아빠와 하 씨 성을 가진 나원 이라는 어머니였단다.”

이것이 나의 꿈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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